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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오늘 날씨]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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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올해 첫 면접 학습두레에서 수시 모의 면접을 진행했다. 작은 추석 같은 재량휴업일이었지만, 내가 맡은 두레 인원중 2명이 같은 대학에 1단계 합격을 했고 엊그제 주말에 2단계 면접이 진행되는 일정이라 출근을 했다. 

 

면접 학습두레는 3학년 전체에서 수시와 수능에서 면접 전형을 지원한 학생 중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팀을 꾸려 교사 1명당 몇 명의 학생이 배정되는 형식이다. 올해 내게 맡겨진 아이들은 모두 아홉 명. 수업에서 만나 알고 있는 아이들보다 서로 낯선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해 건 나를 만나는 아이들은 고3이 난생처음이라 면접 역시 생전 처음 접하는 게 대부분이다. 때문에 실전 모의 면접을 자발적으로 희망한 아이들이지만 (거의) 유치원을 끝으로 무조건적인 환대 대신 경계를 연대의 감동 대신 적자 생존을 하게 만드는 시스템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기에 당부의 말을 먼저 건넨다. 

 

약속한 날 처음 만나기 전에 한 명 한 명에게 메일을 보내서. 아래는 지난주 처음으로 00 이에게 보낸 메일이다. 모의 면접을 위해 아이들과 면접 준비용 대본(기출 질문, 예상 질문에 대해 아이들이 스스로 작성한 자기 답변)을 메일로 주고받기 전에, 미리. 

 

성적과 성격에 관계없이 (말을 더듬고, 눈을 못 맞추고, 얼굴이 유난히 붉어지고, 마른 땀을 흘리기도 하는) 떠는 아이들에게 '너의 그날을, 사실을 기반으로 잘 묘사'하는 것이 면접의 전부,라고 안심을 시키려고. '내가 너의 날씨가 되어 주겠다'라고 먼저 손을 내미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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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이에게

 

'You and I we go together You're the sky I'll be the weather.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멘털'에 나오는, 선생님이 참 좋아하는 대사입니다 혹시 못 봤다면 잠깐 멈추고 봐봐요. 짧은 영상이라도. 면접을 준비하면서 되새겨 봐야 할 이야기거든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날씨가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의 상태, 그 날씨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00 이를 둘러싼 모든 사람, 환경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넓은 의미죠. 그 환경 속에 함께 하겠다는, 정신적인 멘토가 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고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참 든든하겠죠? 그런데요. 멘토는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멘토의 도움을 실천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몫이니까요. 결국 00 이에게 진정한 멘토는 바로 00이 자신이어야 하는 겁니다. 

 

난생처음 보는 (별로 친절하지 않을) 면접관 앞에서 그들이 모르는 '그날, 그 상황'속에서 00 이가 어떻게 '네 삶의 주인공'이 되었던 경험을 현장감 넘치게, 명랑하게 묘사하기. 다가 올 수많은 '그날'을 다짐하기. 그게 면접의 전부에요. 너무 뻔해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또 당연한 이야기지만 00 이가 성공했던(때로는 실패했던) '그날'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지금껏 그랬듯이 00 이의 앞으로 삶에서 크고 작은 모든 일들도 다 '오늘'안에서 일어납니다. 

 

00 이는 어떤 날씨를 좋아하죠? 뭐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인생의 아주 중요한 스포를 하나 알려줄까요? 바로 00 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오늘'의 날씨는 00 이가 좋아하는 날만 있지는 않을 거란 겁니다. 이 사실은 분명하죠.

 

항상 마음에 드는 날씨만 있을 수 없듯 언제나 든든한 멘토를 만날 수는 없죠. 그래서 00이 스스로가 자신에게 가장 큰 믿음을 주고,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되어야 하는 것이랍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날씨건 그 날씨에 둘러 싸인 '오늘'을 00 이의 것으로 받아들여 만들어 내는 연습을 미리 충분히 하는 겁니다. 선생님은 면접이라는 시스템이 그런 연습에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면접을 위해 페이퍼를 작성하면서, 00 이의 '오늘'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그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아야 하고요. 그러는 동안 만난 인연들을 되짚어 봐야 하고요.  

      

싫어하는 날씨로 덮여 있는 '오늘'을 잘 보내야 좋아하는 날씨에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또 다른 00 이의 '오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듯한 봄에 좋아하는 꽃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 같은 것. 

 

그 설렘을 기억해 내 보세요. 0학년 어느 날 무슨 시간에 어떤 말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그러면서 그 시간만큼은 00 이가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00 이가 누군가에게는 그가 좋아하는 날씨가 되어 보는 겁니다.

 

고3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슷한 것은 원하는 대학을 진학하면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애 첫 번째 구체적인 기대를 실천하는 시기이죠. 

 

태어나 처음으로 '오늘'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때인 겁니다. 무엇인가 대단한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밋밋한 '오늘'을 어떻게 의미 있는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오랫동안 제대로 연습해 보는 최초의 해가 되는 것이죠. 

 

결과에 관계없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00 이는 고3이 아니라 정확히는 열아홉 살 먹은 사람이니까요. 준비한 만큼 다 잘 될 겁니다. 00이 자신을 믿어 보세요. 이번 주에는 그 믿음이 커지는데 선생님이 조금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봅시다. 그때 만나 00 이의 설렘의 경험을 같이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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