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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자고 한 사람이 사는 거 있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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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티 2023. 7. 3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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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화요일. 즈마야네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고 조카한테서 톡이 왔다. 아드님과 동갑내기 즈마야 - 목사인 아빠, 전업 주부인 엄마는 한국인인 집의 4남매 중 둘째. 4남매 모두 캐네디언이다. 즈마야 바로 위 누나가 스물둘. 즈마야가 스물. 그 아래로 열일곱, 열셋의 남동생이 있다 - 는 우연히 만난 친구다. 하필 그때가 마침 그때가 된 아름다운 인연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는 걸로 하고.

 

나는 밥 한번 먹자, 술 한잔 하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이 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진하게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어디서 배웠는지(?) 몰라도 원래부터 그렇게. 심지어는 얻어먹는 사람이 내겠다고 해도 극구 말려 버리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오버페이스(!) 한다는 현타를 받을 때가 없진 않다. 참 솔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자식 세대에는 N분의 1을 참 합리적이고 인간 친화적으로 잘하는 것 같다.

 

7월 13일. 우리 사무실에 있는 네 명. 올 들어 처음으로 회식을 했다. 울산이 고향인 A후배 교사가 먼저 제안을 하고, 울산에서  밍크 고래 고기를 택배로 주문해 오고, 퇴계원이 집인 B후배 교사 단골 고깃집에서. 이 분들 역시 당연히 고래 고기 - 김밥 두 줄 정도 들어가는 사이즈의 그릇이 6만 원이란다 - 는 A가, 고깃집에서 나온 건 B가 마지막 맥주집 뒤풀이는 C가 계산을 했다. 나만 전근을 왔다며 3만원 대리비만 내고 내 차에 실려 왔다. 내가 제일 연장자였다.

 

그러나 비슷한 벌이에 자녀를 키우면서 한두 푼이 아쉽지 않은 일상은 없다. 원래 4, 5년 전만 같아도 그렇게 기분 좋게 회식을 한 후 끝이었다. 당연히 내가 사는 거고, 그가 한턱내는 거였다. 하지만 솔직히 나를 위한 방어(!)를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다,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서로 부담이 가지 않는 방법을 자주 제안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맥주집에서도 다음날 사무실에서도 이야기를 했다. 

 

다다음날 마지못해 B가 5만 2천 원씩 입금해 주면 된다고 했다. 서로가 그 자리에서 입금을 하고 다음 회식을 다시 약속을 했다. 서로 부담 없이. 조카톡에 우리 셋 - 나와 남매 - 이 준비해야 할 것과 조카네가 준비할 것 그리고 즈마야네에서 준비할 것들이 목록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방문하는 것도 편안했고, 초대의 본질에 조금 더 충실할 수 있었고, 특히 방문 후의 반가움과 고마움이 더욱 진하게 전해졌다. 

 

조카가 보낸 메시지에는 조카네가 준비할 것, 내가 준비할 것, 즈마야네에서 준비할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내가 준비할 몫은 한국식 치킨 3마리. 그게 전부였다. 한국 가격으로 따지면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확실한 구분 덕에 화려하게 맛있는 저녁을 마음껏 먹었다. 호스트인 즈마야네는 불고기, 튀김, 잡채, 새우구이, 쿠키 등 오히려 더 푸짐하게 플레이팅 해 두었다.

 

식사 시작은 가장 연장자라고 나부터 순서대로 접시를 들고 뷔페처럼 먹을 만큼 담아 먹는  방식 자체도 유쾌했다. 모인 사람들 중에 가장 어린 열세 살 즈마야네 막내는 당연히 제일 마지막에 접시에 담아와 옆에 앉았다. 모두가 막내가 접시에 담아와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환영 인사를 하고 저녁을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이들이 전혀 낯설지 않은, 자연스럽게 유쾌한 저녁이었다.

 

언제 한번 식사하자는 말 하는 사람치고 정말 그렇게 하는 사람이 드물다, 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말은 했는데 현실적으로 조금 부담스러워 날을 잡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많(았)다. 내가 그런 경우도 종종 있(었)고. 아니면, 나는 뭐 살 테니 너는 뭐 사라고 하는 말 자체를 쫌스럽다고 표현하는 한국적인 한턱 문화가 여전해서 그런지도.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40년 지기 친구하고 가족끼리 모임을 가질 때 아내와 재수 씨는 서로 역할 분담을 한 지 오래다. 이미 그렇게 하는 가족 문화가 우리 사이에서도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던 거다. 이유는 단 하나.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그러나 서로 도움 주고받는 것부터 심리적인 안정감을 공유하려는 순수한 의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즈마야네 식탁 옆 선반. 정이 넘치는 열 두 개들이 초코파이 박스가 두 개나 놓여 있다. 여기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한국인인 캐네디언들이 특히 좋아한단다. 우리처럼 어릴 때 자그마한 파티, 가족끼리, 친구끼리 기념해야 할 때 초코파이를 잘라 초를 올리고 세리머니를 가끔 한단다. 그들과 당당히 어울려 살아내야 하는 지금 우리 자식 세대.  

 

그러나 역사상 유일하게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해질 위기에 놓여 있는 세대. 그 세대들에게 정이 넘친다는 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거란 생각이 든다. 사람 정 없게 말이야 하면서 관습적으로 오버페이스를 강요받는 문화 속에서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은 쌍방이어야 하는 거라는 건 쌀로 밥 짓는 이야기일 거다. 

 

정이 넘치는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부모 세대의 오버페이스 문화 버리기. 그거야말로 정말 정이 넘치는 삶을 유지하는 것일지도.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나 이정도로 먹고 살만해 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한턱 문화 대신 한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는 아드님, 따님이 합리적인 소비와 더 합리적인 인간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는 비결을 더욱 격려(!)해야 하는 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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