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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되어 줄게요

오늘도 나이쓰

by 지담티 2024. 5. 16.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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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평소 새벽에 잘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요. 덕분에 요 며칠 새벽마다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종일 비 내린 어제를 이어받은 이 새벽. 여전한 새소리가 마치 빳빳한 형형색색의 셀로판지를 조심스레 비비듯 들려와요. 

 

이 새벽을 지나가면 곧 아침이 이어 옵니다. 참 고맙게도 다시, 오늘의 시작이죠. 걸어서, 온갖 탈것에 몸을 실어서 내 역할을 할 공간으로 이동해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낮을 다 채운, 잘 채운 그 끝에서 어김없이 저녁이 기다려 줍니다. 밤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저녁. 다시 나를 눕히고 생각으로 성장하게 만들고 새벽을 기대하게 만들어 주죠. 늘 반복되는 기적의 시간 릴레이입니다. 

 

햇살, 구름, 바람. 비, 함박눈, 황사.... 시간 릴레이에 항상 동행하는 것들입니다. 여전히 나를 제때 찾아와 주는 오늘이 마치 어제의 오늘과는 전혀 다른 날인 것처럼 신비롭게 만들어 주려는 듯 말이죠. 무심한 듯, 아무 일 없는 듯, 당연한 듯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늘 걷는 산책로처럼. 옆에 늘 있는 것 같은 나무들, 꽃들, 풀들, 잡초들 그리고 흙과 돌멩이들처럼.  

 

언제부터인가 아침에 아내와 남매는 저한테 묻습니다. '자기야, 아빠야, 아버지, 오늘 날씨 어떻데?' 비슷한 어플, 기사를 보고 챙겨보는 건데 날씨를 꼭 저한테 묻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어, 덥데. 얇게 입어야겠어', '오늘 비 오네, 우산 챙겨', '먼지 가득이래, 마스크 꼭 써', '오늘 최곤데, 멋지게 입어'.

 

그런데 말이에요. 같은 하늘과 같은 땅 사이에서 같은 날씨라도 그날의 오늘이 다 같지는 않지요. 누구에게는 찬란한 햇살이 극도로 슬퍼질 수 있죠. 누구에게는 비바람이 어떤 이에게는 오랜만에 한시름 쉬어 갈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일 수 있죠. 구름 사이로 살짝 미치는 연약한 몇 분 간의 햇살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구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수줍게 내밀어 준 한 모금의 물처럼.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뻐집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에 내 몸에서 힘이 솟아납니다. 삐죽거리면 얼른 달려가 안아주고 싶습니다. 늘 그렇게 투박하게 내뱉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계속 그 사람이 기뻐할 수 있게, 기분 좋아질 수 있게 무엇이든 주고 싶습니다. 내 모든 걸 주어서라도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습니다. 

 

날씨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날씨 때문에 흔들리고, 어쩔 수 없는 날씨에 핑계를 대는 저에게 부족했던 마음입니다. 한 바퀴 두 바퀴 동네를 돌면서 생각이 떠올라요. 계속 옆에서 말을 걸어 주는 당신 덕분에 느껴요. 날씨에 무관하게 그리 높지도 그리 낮지도 않은 열정과 희망을 유지하는 오늘이 나의 진정한 오늘이라는 것을. 그것들을 잃지 않으려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오늘이 진짜 나와 당신의 오늘이라고. 

 

혼자, 속으로 결론을 내려 봅니다. 세상의 온갖 신들이 작당을 하고 만들어 내는 게 날씨라고. 그렇게 나에게 직접 보여주려 하는 거라고요. 뜨겁게, 차갑게, 어둑하게, 선선하게, 오싹하게, 으스스하게, 시원하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햇살 가득하게. 

 

그 사이에서 나의 열정과 희망으로 시작한 사랑을 잃지 말라고. 되찾으라고. 그렇게 서로에게 좋은 날씨가 되어 보라고 말이죠. 온 우주의 작당으로 거대하게 주어진 오늘. 그 안의 진짜 날씨는 내가 정하는 거일 겁니다. 먹구름 사이로 빼꼼한 푸른 바다의 햇살이 더 넓어지든지 그마저 가려지든 지 그건 하늘에 맡겨두고 말이죠. 

 

엊그제 아침에 누구랑 뭐 먹었지, 도 한참동안 생각나지 않는 내가 말입니다. 신들이 그러시잖아요, 매순간. 나의 오늘은 나뭇가지 위에 살짝 걸터앉았다 사라지는 새처럼 순식간일거라고. 그럴게요. 오늘 기분상해죄의 주범이 되지 않도록 당신에게 좋은 날씨가 되어 줄게요. 나의 오늘 안에 반드시 당신을 사랑하고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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