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부터 계속 오락가락하던 가을비. 우산을 쓰지 않고 그냥 맞으면서 걷고 싶었던 가을비다. 하지만 어둑해지자 여름 폭우처럼 급하게 내린다. 밤 10시. 열여덟 아드님을 기다렸다. 20분 정도, 학교 정문 앞에서. 운전석에서 연신 오른쪽 차장으로 어깨를 움츠려 낮게 올려다본다. 우리 아드님, 어디 있나.
세찬 빗줄기가 어둠을 갈라놓은 그 틈으로 언덕을 내려오는 시커먼 무리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내 눈이 차창에서 흘러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옮긴 그 순간. 방울과 방울 사이로 아드님이 툭하고 갑자기 들어왔다. 작은 우산으로 머리만 가려받친 아드님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손은 차문을 열고 있었다.
닫히는 차문 사이로 친구들의 인사소리가 따라 들어와 내 눈에까지 와닿는다. 차에 타자마자 아드님이 먼저 말을 건다. 오늘 저녁에 축구를 보실 거냐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첫 번째 경기란다. 상대는 투르크메니스탄. 참 오랜만이다. 기다린 나를, 눈으로 보면서, 먼저 말을 거는 게.
나의 아버지 눈을 언제 그렇게 또렷하게 맞추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안부 전화는 눈을 볼 수 없으니까. 2-3주에 한 번씩 뵐 때는 매번 얼굴을 뵙지만 1초, 2초, 3초 그렇게 아주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기 때문에. 보이는데 안 보이는 듯한, 반가운데 서먹한 듯한. 현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만들어진 인사법.
할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고 몸도 피곤한 평일 늦은 새벽. 아드님이 먼저 건넨 이 말이 시간을 '같이'보내자는 이야기라는 것은 아드님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건 마음이 하는 거라는 것을. 부모의 안부가 아니라 학부모의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게 그 마음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아내는 먼저 잠들었고, 나는 아드님과 같이 봤다. 그러는 동안 아드님의 계열 선택이야기를 새벽 1시를 넘기면서까지 나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버지 생신 때 드시고 남은 백세주를 석 잔에 나눠 먹었다. 옆에서 아드님은 바나나 우유에 감자칩을 바삭거리며 먹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아드님은 나와 무릎이 닿아도 피하지 않았다. 슬쩍 내 팔에 자기 팔을 걸쳤다. 피부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대단했다. 너무 따뜻했다. 밖으로는 경기력에 대해, 선수들에 대해, 감독에 대해, 우리나라 축구 발전에 대해, 월드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안으로는 '우리 사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드님은 많은 이야기를 그렇게 걸고 있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이런 스킨십이, 따듯함이. 유난히 나의 맨살 가슴 위에서 잠드는 걸 좋아라 했던 아가, 아드님이다. 뭘 하다가도 내가 윗옷을 벗는 걸 보면 기어올라왔다. 그래서 한참을 일부러 윗옷을 벗는 시늉을 하기도 했던, 그 장면 장면이 불현듯 온기 속에서 솟아올랐다.
아드님은 엄마 젖가슴에 파묻히듯 내 가슴 위에서도 가슴을 벌렁거리며 배냇짓을 하곤 했다. 젖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나는 일부러 나의 숨을 아드님의 벌렁거리는 가슴에 맞췄다. 밀고 밀리고, 다시 밀고 밀리고 하면서.
지금처럼 쨍하게 추워지는 날이면 그 가슴 사이에 가득했던 온기가 생각난다. 생각만으로 냉한 게 달아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와 나의 온기가 우리를 같이 살리는, 같이 살게 해주는 전부이지 싶어진다. 이제라도 한번 더 꼬옥 안아주고, 지금이라도 한번 더 포옥 안겨야 하는 이유다. 안그러면 두고두고 손해다.
[원문:2019년 9월 10일(화) < 같은 공간에서 같이 > ]
낮부터 오락가락하던 가을비가 늦은 밤에는 여름 폭우처럼 내린다. 밤 10시. 큰아이 학교앞에서 20분 정도 기다린다. 세찬 빗줄기 속에서 언덕을 내려는 시커먼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큰아이가 툭하고 나타난다. 작은 우산으로 머리만 가려받친 큰아이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탄다. 닫히는 차문사이로 친구들의 인사소리가 들린다. 내게도 인사를 건넨다. 차에 타자마자 오늘 저녁에 축구를 보실거냐고 묻는다.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첫번째 경기란다. 상대는 투르크메니스탄. 이 말이 같이 보자는 이야기라는 것을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속으로는 평일 늦은 새벽시간까지 축구를 봐야하냐고 묻고 있었다. 막연한 불안감이다. 학부모에게 있는 본능같은 것. 아내는 먼저 잠들었고, 나는 같이 봤다. 계열을 선택하느라 새벽 1시를 넘기면서 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살짝 피곤했는데, 1시까지 축구를 같이 봤다. 나는 아버지 생신때 드시고 남은 백세주를 석잔에 나눠 먹었다. 그러는 사이 큰아이는 바나나 우유에 감자칩을 바삭거리며 먹었다. 침대에 걸터 앉은 채 옆에 바짝 붙어서. 큰아이는 나와 무릎이 닿아도 피하지 않았다. 슬쩍 내 팔에 자기 팔을 걸치었다. 피부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대단했다. 많이 따뜻했다. 밖으로는 경기력에 대해, 선수들에 대해, 감독에 대해, 우리나라 춖구 발전에 대해, 월드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안으로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행복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할 수 있는게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