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식食

아주 천천히 잘근잘근 씹어버리고 싶을 때

지담티 2023. 11. 29.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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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고픈 데 입맛이 없을 때가 있다(나도 그럴때가 있긴 있다). 그래도 지금껏 지내오면서 깨닫고 있는 현명한 거 딱 하나. 아무리 바빠서, 그럴때마다 이유가 있었어도, 아주 아주 성실하게, 책임감있게, 열심히 사는 척 하느라 끼니를 거르면, 그 끼니는 평생, 영원히 찾아 먹지 못한다는 것.

 

그 속상(?)한 마음에,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한끼에 두끼치를 먹는다고 그 게 나를 살리는, 또 벌떡 일어나 허벅지 잔뜩 힘을 주고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하루를 진하게 살아내고, 흐물거리며 대충 채워도, 하루는 하루인 것처럼.   

 

그럴 때 또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바로 청양고추 멸치찜. 뭐, 멸치반찬은 계란처럼, 김처럼 아주 흔하디 흔한 반찬이다. 어릴때도 지금도. 하지만 아주 천천히, 잘근 잘근 입속에서 한참을 씹다 보면 머리가 맑아 진다. 입속이 한없이 달아진다. 목구멍으로 넘기가 아까울 정도로. 

 

 

  

1. 고추장 콕콕 찍어 먹는 중간 크기의 멸치를 수북히 준비한다. 머리, 똥을 제거하면서, 한마리 한마리 손으로 찢는다(처음 먹을때는 지리멸치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지리멸치로도 만들어 보셨다는데, 맛이 덜하단다. 내가 지금껏 먹은 건 지리멸치가 아니었던 거다)

 

2. 찢은 멸치를 채에 올려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는다. 그리고 하얀 포로 감싼 뒤 물기를 쪼옥 짜준다. 이때 손에 힘을 주어 짜면 안된다. 으스러지고, 뭉쳐져서 모양이 살아나지 않는다. 

 

3. 기름을 넣지 않은 후라이팬위에 찢은 멸치를 올린다. 센불에서 얼른 멸치 수분을 날린다. 튀김용 긴 나무젓가락을 사용한다. 멸치도 안타고, 팬도 안 긁히게. 그리고 수분이 어느 정도 날아간 듯, 바로 고추장 찍어 맥주 한잔 해도될 듯 하면. 들기름을 팬에 두른 후, 다시 한번 재바르게 볶아 낸다.

 

4. 송송 채 써러 둔 청양 고추를 멸치를 걷어 낸 팬 위에 올린다. 넉넉하게. 청양 고추가 넉넉하면 맛이, 향히 훨씬 더 살아난다. 멸치향이 가득한 들기름으로 청양 고추가 반지르르하게 코팅된 듯 하면 옆에 빼놨던 볶은 멸치와 섞어서 한번 더 볶아 준다. 

 

5. 이제 마지막. 속 깊은 찜기에 물을 반컵 정도만 넣는다. 그리고 센불로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찜기위에 에어프라이용 종이호일(없으면 그냥해도 되지만, 채반 틈 사이사이로 박혀드는 멸치 살점들이 아까워진다)을 깔고 볶은 청양고추멸치를 올린다. 찜기 뚜껑을 덮지 않고 30초 정도만 뜨거운 김을 씌워준다. 

 

6. 이제 종이호일째로 꺼내 식히면 된다. 온 몸으 갈기 갈기 찢긴 멸치가, 뭉턱 뭉턱 잘린 청양고추가 있는 힘껏 받은 열이 천천히, 천천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넉넉하게 기다려 주면 된다. 그런뒤 속 깊이가 다 다른, 네모, 동그라미, 유리, 플라스틱 모양도 재질도 다 다른, 거창하지 않은 용기에 나눠 담는다. 

 

두고 두고 꺼내 먹는다. 밥에 물말아 먹을 때도, 물에 밥말아 먹을 때도. 하루를 그냥 말아 먹은 날에도. 하루를 한시간처럼 보낸 날에도. 대신 급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천천히 씹어야 한다. 이미 부서진 온몸을 다시 잘근 잘근 씹어야 한다. 그래야만 입속에서 머리를 지나 마음까지 짬조름하게 달아지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바쁘게 돌아치다 한참을 전화 못하다가, 문득 생각나 전화를 건다. 순전히, 내 마음대로다. 몇번을 전화해도 받으시 질 않는다. 그렇게 순간 자식은 평소에도 그런 척, 부모 스토커가 된다. 

 

어, 전화를 죽여(?) 놓고 있었네. 오늘 병원 가느라고, 아침 일찍 택시를 기다렸는데, 안 오길래. 지금도 걸어가는 중이야.

 

아, 별일 없으면 되죠. 잘 다녀오세요. 

 

 

 

오래오래, 하루를, 나를, 마음을, 그때를 천천히, 잘근 잘근 씹어 보면 새로운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는 청양고추멸치찜이 나를 올려다 보면 외친다. 

 

아! 쉬엄쉬엄 해.  

과식하지 말고, 과속하지 말고~~~~

 

 

#김여사, 정여사 집밥#나의 S(소울) F(푸드) 시리즈 3탄#청양고추멸치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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