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따듯한 T가 될 수 있을까
이미 봄
지담티
2023. 11. 2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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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잘 지내셨죠? 윤쌤을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기뻐요.
송쌤이다. 언제나 유쾌하게 솔직한 자기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그냥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어 준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 학교 뒤 산속에 집을 짓고 사는, 아마추어 건축가이자, 전국적으로 유명한 국어쌤이자 독서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이 분야(?)에서는 이름이 자자하다. 방송에도 여러 번, 기사에도 여러 번, 책은 열댓 권. 교사들 사이에서는 거의 연예인급이다. 그런 송쌤을 전화 한 통으로 만나는 나를 부러워할 정도다. 그런 송쌤이 2년 간, 어머님 병간호 때문에 학교를 떠나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내년에 활용할 교재를 만들면서 내 전공과 관련한 분야에 조언을 구해왔다. 복직을 위한 워밍업 중이었다. 그렇게 조언에 대한 보답을 꼭 해야 한다며 날짜를 잡자고 한 게 엊그제 퇴근길이었다. 송쌤을 만날 때는 항상 한 가지 즐거움이 따라다닌다. 그 동네 숨어 있는 맛집을 갈 수 있다는 것.
송쌤의 맛집 기준은 조금은 복합적이지만, 딱 한 가지. 가격과 양은 물론 주인장도 (정서적으로) 헤비 하지 않고, 해피하게 정직으로 만드는 곳 - 을 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안내받은 곳이 제주도 몸국집이었다. 역시나, 휙 하고 지나칠만한 곳에 숨어 있는 웅크린 집이었다. 메뉴도 딱 한 가지. 아니, 두 가지. 몸국과 제주 돼지고기 수육.
그런데, 11월, 지금은 가을인가요 겨울인가요. 선생님?
역시 송쌤답다. 언제나 유쾌하게, 하고 싶은 질문을 아주 나이스 타이밍하게 자주 묻는다. 특히, 지정학적인 문제, 입지 문제, 공간을 들여다보는 시선, 사람에 대한 궁금증 등. 제주 몸국 한 그릇에 온몸 이 사르르 녹는 걸 보면 분명 겨울이네요. 그런데 완전하게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된 듯 하니 아쉬운 가을인 듯하고요.
그렇게 따듯한 송쌤덕에 한 그릇 몸국을 먹은 저녁 날. 동네를 걷다, 달리다 했다. 타닥이와 함께. 며칠 전부터 걸을 때는 괜찮은데 달릴 때는 얼굴에 와 빗겨나가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그런데 걷다, 달리다 보이는 동네 풍경들 속에는 가을도, 겨울도 아닌 봄이 곳곳에서 보였다.
한여름 내내 그늘을 만들어 줬던 커다란 양산. 이제는 가지런히 말려 접혀서 축 늘어져 있다. 그 양산도 깊어가는 가을 저녁, 겨울 새벽이 추울세라 그 누군가가 정성스러운 손길로 덮개를 깔끔하게 씌워뒀다. 그 덮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내년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잉? 안 가요?) 아빠, 뭐 봄?
동네를 신나게 걷고 싶은 타닥이 재촉덕에 얼른 다시 동네. 가을이 시작되면서 수북이 골목에, 도로에, 차 지붕에 쌓였던 낙엽들도 온종일 고생했을 손길덕에 가지런히 포장되어 봄으로 실려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온 동네에서 온 가을이 봄을 기다리는 장소가 있나 보다.

그 옆으로는 땅속에 저장된 봄을 겨우내 포근하게 안아주려 화단에 보온벽을 설치하기 위한 말뚝이 며칠 새에 다 심어져 있다. 그 모습만 봐도 봄이 보인다. 땅속에 숨어 있는 봄이. 땅속 가득한 봄이. 그 모습을 나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집 앞 마트 길가에 나와 있는 봄동도 같이 보고 있었다.
야, 오, 너도 봄이야, 나도 봄인데.
반가워, 너희들 다 봄이구나.
난 멀리 땅끝 바닷가 해남에서 왔어.
타닥이도 나도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크게 크게 돌면서 온갖 봄을 다 구경했다. 숨어 있는다고 해도 다 보이는 그 봄을. 봄을 찾아내면 보물이 된다. 내 마음이. 그 마음을 가지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 마음도 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에너지다 잘 생긴다. 그렇게 봄을 꼬깃꼬깃 숨겨 두는 모든 겨울은 언제나 새 겨울이다.
그렇게 봄을 찾아 기분 좋은 날.
목표 모두 달성! 오늘 고생한 당신, 정말 수고하셨어요
라는 기계적인 멘트조차 내 마음을 황사 없고, 미세먼지 없고, 비염 없는 봄으로 만들어 줬다. 선홍빛으로 씰룩거리는 타닥이 엉덩이를 기분 좋게 바라보며 뒤따라 걷는데, 송쌤한테서 정말 봄이 날아들었다.
오늘 만남을 표현해 준 샘의 언어가 아름답습니다. 변함없이 건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선생님과 만나서 제 영혼이 조금 더 좋아졌어요. 꼭 평화롭겠어요☺ 선생님이 학생들과 멋있게 지내셔서 이야기를 듣는 데 참 편안했어요. 고마워요. 우리 내년 봄에 꼭 다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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